빛과 어둠 사이에서
사랑하는 에덴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 화가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보려 합니다.
카라바조라는 이름은 예술사에서는 찬사와 경탄의 대상이지만, 그의 삶은 폭력과 죄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회화가 보여 주는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 속에서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묵상하려 합니다.
이 자리에서 그의 이야기를 단순한 미술사가 아닌 신앙의 거울로 삼아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5절 (개역개정):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천재와 범죄자, 한 사람 안에 공존한 모순
카라바조는 빛을 다루는 능력으로 인물을 실제보다 더 생생하게 드러낸 화가였지만, 한편으로는 칼을 휘두르는 범죄자로 기억됩니다.
우리는 그의 이중적 얼굴을 보며 인간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된 존재인지 자각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도 위대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 때로는 실수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현실이 있습니다.
그 사실을 외면하거나 미화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창조적 은사까지 무조건 부정해서도 안 됩니다.
실제 한 도시의 젊은 예술가가 교회 청년부에서 미술 강습을 하며 많은 젊은이에게 은혜를 끼쳤지만, 개인적 분노 조절 문제로 공동체에 큰 상처를 남긴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은사와 인격은 별개가 아님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카라바조의 삶을 통해 우리는 은사(하나님이 주신 능력)와 윤리(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함)의 균형을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성도는 은사로만 평가받거나 죄로만 규정되어서는 안 되며, 회개와 회복의 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탁월한 능력 자체를 죄로 보지 않지만, 그 능력이 자만, 불의, 폭력으로 쓰일 때 정죄합니다.
사도 바울은 은사를 받았으나 사랑 없이는 무가치하다고 말합니다(고전 13장 참조).
카라바조를 통해 우리는 예술의 위대함을 인정하되, 그 예술이 사람을 해치는 도구가 되었을 때 교회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돌보며, 동시에 죄인에게도 회복의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림의 빛과 어둠은 우리 신앙의 거울입니다
카라바조의 키아로스쿠로(명암 대비) 기법은 단순한 미술적 기교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는 신학적 은유가 됩니다.
빛은 진리와 은혜를, 어둠은 죄와 무지를 상징하며 두 요소가 한 화면에 공존할 때 관객은 더 깊은 성찰을 하게 됩니다.
우리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로 완전한 빛만 있거나 완전한 어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자가 충돌하고 섞이는 현장입니다.
교회는 이 충돌의 장에서 빛을 세우되, 어둠을 단순히 몰아내는 폭력으로 대응하지 말고 진리와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 안에서 드러난 성적 스캔들이나 재정 비리 같은 어두운 사건 앞에서 쉽게 분노하거나 단죄로만 끝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두움을 고발함과 동시에 회복 가능한 사람을 위한 길을 찾는 것입니다.
카라바조의 성화에서 보이는 인간적 현실감은 성경 이야기의 성스러움과 현실성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진리는 이상적이지만,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빛을 단호하게 세우는 일과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일은 함께 가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적 정의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개인의 회복을 위한 목양(양육)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빛의 칭찬자이자 어둠의 치유자가 되어야 하며, 그 두 역할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소명입니다.
그 소명을 수행할 때 교회는 세상의 빛으로서 증거를 세울 수 있습니다.

회개와 용서, 그리고 책임의 균형
카라바조의 삶은 우리에게 회개의 절박함을 일깨워 주지만 동시에 책임의 무게를 가볍게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도 줍니다.
성경은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라(요한일서 1장 9절), 동시에 행위의 열매로 자신을 증명하라고 가르칩니다(야고보서 2장 참조).
교회는 잘못을 고백하는 자에게 용서를 선포해야 하지만, 회개의 실천을 요구함으로써 공동체의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카라바조의 재능을 칭송하면서도 그의 폭력과 도피는 정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한 형제가 가정 폭력으로 교회에서 징계를 받았을 때,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회복을 도우며, 다른 하나는 가해자에게 회개의 길을 제시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균형을 잃으면 교회는 무책임해지거나 냉혹해집니다.
하나님은 정의이시며(공의), 동시에 긍휼이신 분입니다(자비).
우리는 정의를 세우되 자비를 베푸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그 방식은 항상 성경적 기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합니다.
카라바조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비참함과 아름다움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에게도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죄의 결과를 무시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주어져야 하고, 참된 회복은 책임 있는 행동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회복의 길입니다.
우리의 삶을 향한 적용과 결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 화가의 삶을 빌어 우리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당신의 삶에도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있으며, 그것을 부인하거나 숨기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먼저 자신의 죄를 솔직히 바라보고 회개하는 것이 시작입니다(자백과 회개).
그리고 회개가 있으면 공동체 속에서 책임 있는 행동으로 삶의 변화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교회로서 우리는 실수를 저지른 자를 향해 문을 닫지 않고, 그러나 무책임함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사람들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 빛은 때로는 부끄러움과 회개를 통해 더 밝게 빛납니다.
카라바조가 남긴 예술적 유산과 그의 죄악된 삶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가르칩니다.
첫째, 사람의 재능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라, 둘째, 사람의 죄를 외면하지 말고 회복의 길을 제시하라.
이제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 각자는 빛 앞에서 진실되게 서기를 결단합시다.
죄를 숨기며 도망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내어 맡기며 회개의 길을 걸읍시다.
교회는 그 길을 함께 걸으며 사랑으로 책임과 회복을 실천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우리를 바르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