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다리를 놓는 교회

사랑하는 에덴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 공론화된 정책 방향과 국제적 상황은 우리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평화를 향한 간절한 소망을 다시 일깨우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정치적 설교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나눌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화해와 신뢰의 길이 현실의 갈등과 긴장 속에서 어떤 방향과 태도를 요구하는가 하는 영적 성찰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나왔고 또한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나니
곧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으로 자신과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셨나니
또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 것 같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라”(고린도후서 5:18-20, 개역개정)

무너진 다리 위에서 새로운 길을 상상하기

한반도 상황을 한 장면으로 표현하면 저는 종종 ‘무너진 다리’가 떠오릅니다.
그 다리는 오랫동안 사람들을 이어 주던 통로였지만 갈등과 불신으로 부분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정책과 외교에 따라 다리는 때로 보수되고 때로는 더 멀어지기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너진 것을 본능적으로 공격하거나 포기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복을 위해 누군가가 첫 돌을 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상상하는 다리는 특정 이념이나 권력의 다리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다리입니다.
이 다리를 놓는 일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으며, 신중함과 인내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부분 복원된 돌다리 위에서 사람들이 돌을 놓으며 화해와 신뢰를 재건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

성경의 화해는 곧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 회복은 때로 정치적 합의와 비슷한 절차를 필요로 하지만, 그 근저에는 회개의 태도와 용서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리를 상상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다리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신뢰의 표식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군가가 다리를 걸어 건너는 순간, 양쪽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요구하는 용기입니다.

신뢰의 돌을 놓는 사람들

화해의 실제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한 가정에서 오랜 갈등을 겪던 형제가 먼저 전화를 걸어 용서를 구한 일, 마을회관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이웃의 말을 경청하며 오해를 풀어간 일 등이 현실적 예입니다.
정치나 외교 무대의 수많은 선언보다도, 이런 작은 신뢰의 돌들이 모여 큰 다리를 이룹니다.
교회는 이 일을 위한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말로만 화해를 말하지 않고 몸으로 신뢰를 쌓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은 공적 삶에서 신중함과 정직함으로 신뢰를 상실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신뢰 회복에는 시간이 걸리며, 때로는 되돌아가는 일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향한 존중과 약자를 보호하는 마음으로 작은 돌 하나를 놓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돌을 놓아 다리를 이어가며 협력과 화해를 표현하는 고전적 양식의 그림

현실정치에서 정책은 때로 불가피한 선택과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관점은 언제나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최우선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놓는 돌은 상대방을 이길 도구가 아니라 서로를 잇는 도구여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행동의 동기와 방식이 옳은지 늘 기도하며 검토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화해의 사역에 참여하는 자로서 겸손히 복음을 증언해야 합니다.

평화와 공의의 실천적 길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의(옳음)가 뒷받침될 때 참된 평화가 세워집니다.
성경은 악을 묵인하거나 불의를 정당화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자를 위해 서서 공의로운 편에 설 것을 요구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도 마찬가지로 정의의 원칙을 무시한 채 일시적 합의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교회는 화해를 촉구하면서도 공의를 위한 목소리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정치적 편향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지키는 일입니다.
또한 평화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 속에서 실천될 때 지속됩니다;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 이웃 돌봄, 그리고 진실한 대화가 모두 평화의 기초입니다.
성도들은 일상에서 공의를 실천함으로써 더 넓은 사회적 신뢰를 쌓는 일에 기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실천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무조건적인 이상만으로는 현실의 위험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기도와 지혜로운 정책, 그리고 국제사회와의 협력 속에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교회는 대안을 제시하고, 때로는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언제나 사람의 생명과 평화를 우선하는 입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의 구체적 역할

교회는 기도의 공동체이며 동시에 행동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지도자들이 지혜롭고 공의롭게 역할을 감당하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도와 함께 구체적 실천도 따라야 합니다; 탈북민 돕기, 남북 이산가족을 위한 기도와 지원, 평화 교육 등이 그 예입니다.
교회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고통 앞에서 침묵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변에서 작은 신뢰의 돌을 놓을 때, 사회 전체의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진실을 말하는 용기와 동시에 대화의 문을 여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상대방을 적으로 보지 않고 존엄한 형제로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화해의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놓을 수 있는 실천적 과제는 명확합니다; 대화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교류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인도적 사안을 우선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 내에서 갈등을 화해로 풀어가는 훈련을 통해 성도들이 공적 삶에서도 모범을 보이게 해야 합니다.
이 모두가 곧 복음의 증거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평화의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바꿀 위인이 아니라도 다리를 놓는 한 사람, 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작은 돌을 쥐고 조심스레 놓을 뿐이지만 그 돌들이 모여 큰 길이 됩니다.
교회가 바로 그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마무리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결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매일 기도로서 평화를 위해 무릎 꿇을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대화를 촉진하고 혐오와 적대의 언어를 삼가겠습니다.
셋째, 우리는 약자를 돌보고 정의를 실천하는 삶을 더 힘써 행하겠습니다.
이런 결단은 거창한 정치 이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을 닮은 삶의 방식입니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지도자들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간구합시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오늘 거친 손으로라도 신뢰의 돌을 놓는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성도 여러분, 평화의 다리를 놓는 일에 함께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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